바다코끼리 사냥권리


수백년동안 대서양 바다코끼리는 미국 서부에 퍼져 있는 들소만큼이나 많이 캐나다 북극지방에 서식하고 있었다. 고기, 가죽, 기름, 상아, 엄니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기 때문에 이 거대하고 무방비 상태의 해양 포유류는 사냥꾼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 결과 19세기 말까지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급기야 1928년 캐나다는 4500년동안 바다코끼리 사냥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이누이트(Inuit) 사냥꾼을 제외하고는 바다코끼리 사냥을 전면 금지했다.

1990년대 이누이트 지도자들이 캐나다 정부와 접촉해서 한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자신들에게 할당된 수의 바다코끼리를 사냥할 수 있는 권리를 사냥꾼들에게 팔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더라도 죽는 바다코끼리의 수는 같을 것이니 말이다. 이누이트 족은 사냥요금을 받고, 사냥꾼의 가이드로 일할 수 있고, 사냥과정을 감시할 수 있으며, 늘 해왔던 대로 고기와 가죽을 가질 수 있을 터였다. 이 방법은 기존의 사냥 할당수를 초과하지 않고도 가난한 공동체의 경제상황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캐나다 정부는 이에 동의했다.

오늘날 세계 각지의 부유한 트로피 헌터들이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려고 대서양으로 향한다. 그들은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6천~6500달러를 지불한다. 하지만 잘 잡히지 않는 사냥감을 쫓거나 몰래 다가가서 사냥하는 전율을 느끼려고 가는 것은 아니다. 바다코끼리는 동작이 굼뜨고 위협적이지 않은 동물이기 때문에 총을 가진 사냥꾼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C.J. 시버스(chivers)는 뉴욕타임스매거진에 기고한 흥미로운 기사에서 이누이트 족읙 감독 하에 이루어지는 바다코끼리 사냥을 ‘기다란 보트를 타고 총으로 아주 커다랗고 둥근 빈-백 의자(beanbag chair)를 쏘는’ 행위에 비유했다.

사냥 가이드들은 바다코끼리의 10여미터 근처까지 보트를 몰고 가서 사냥꾼들에게 언제 총을 쏴야 할지 말해준다. 이러한 사냥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도전하는 맛도 없고 오락활동이라기보다 죽음관광에 가깝다. 심지어 사냥꾼은 집에 돌아가 벽에 박제를 걸어놓을 수도 없다. 미국에서는 바다코끼리가 보호 대상이라서 신체부위를 반입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틀림없이 사냥클럽에서 제공하는 목록에 올라 있는 동물의 모든 종을 사냥해보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그 목록에는 아프리카 5대 동물로, 표범, 사자, 코끼리, 코뿔소, 아프리카물소가 있고, 북극지방의 그랜드슬램으로 순록, 사향 소, 북극곰, 바다코끼리가 있다.

이는 칭찬받을 만한 목적도 아니고, 여기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시장은 스스로 만족하는 욕구에 판단을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실 시장논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누이트 족이 일정 수의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는 권리를 팔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한데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기존의 사냥 할당수를 초과하지 않으면서도 이누이트 족은 새로운 수입원을 챙길 수 있고 사냥꾼들은 그들의 살생부 명단을 완성할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다코끼리를 죽이는 권리를 파는 행위는 자녀 출산 권리나 오염배출권을 파는 것과 같다. 할당량이 정해져 있기만 하다면, 시장논리는 사냥 허가증의 거래를 허용함으로써 전체 행복을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손해를 입는 사람 없이, 행위에 가담한 당사자들은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바다코끼리 사냥 시장에는 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논쟁을 위해, 이누이트 족이 수백년동안 해왔던 대로 생계를 위한 바다코끼리 사냥을 허용하는 정책이 합당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바다코끼리를 죽일 권리를 사냥꾼들에게 팔도록 허용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에 도덕적으로 반박의 여지가 여전히 있다.

한가지 이유는 바다코끼리 사냥이라는 이상야릇한 시장이 사회적 효용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비뚤어진 욕구를 채워줄 뿐이기 때문이다. 맹수사냥을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바다코끼리 사냥은 좀 다른 문제다.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사냥감을 쫓지도 않으면서, 단순히 사냥 목록을 채우기 위해 무력한 포유동물을 가까운 거리에서 죽이고자 하는 욕구는 설사 이누이트 족에게 별도의 수입원을 안겨준다 하더라도 충족할 가치가 없다.

두번째 이유는 이누이트 족이 자기 부족에게 할당된 바다코끼리 사냥 권리를 외부인에게 파는 것은 애당초 자신들의 공동체가 부여받은 면제 혜택의 의미와 목적을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누이트 족의 생활방식을 기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바다코끼리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과 특권을 악용하여 동물을 죽여 현금을 손에 쥐는 부업으로 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저) 중에서 발췌

 

 

참 놀라운 사실과 장면들을 많이 목격한 센델 교수님의 책이었다.

위에서 예로 든 바다코끼리 사냥시장  말고도, 검은코뿔소 사냥권, 말기환금, 벌금의 요금화, 오염권 거래제, 시정마케팅 등등 

만능시장주의에 빠져 도덕적 가치를 밀어내고 있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많은 혼란의 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게 요즈음 많이 고민되는 지점인데,

과연 시장주의의 전성시대는 앞으로 어떤 흐름을 이어갈 것인가 이다.

비단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는 예들의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기존의 자율에 의한 방식대로는 더 이상 해결되기 힘든 문제들이 우리를 톡톡히 괴롭히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혜택을 많이 봐왔던 그대로의 방식으로 해결점을 찾으려 하는 솔루션들이 문제해결 가능성을 확보하느냐는 것에 대해

좀더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정확한 계산과 빠른 속도, 계량/공식화, 거래와 가격의 규범화는 미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영역에까지 침범하면서 

오랫동안 견고하던 도덕적 가치체계에 대한 이해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가치 자체가 흔들리니, 이도저도 아니게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중간고사를 치른 후 정답이 애매한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 하느라 소모적인 그런 형국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날카롭게 갈아낸 칼끝이 도리어 우리의 가슴을 정교하게 겨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인류의 역사를 가장 풍요롭게 한 시장경제가 치열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때임이 틀림없다고 본다.